대선공약이 난무한다. 이런 공약은 대선 후보가 직접 낸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를 둘러싼 세력들이 한두 가지씩 꽂아 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최근 ‘에너지 고속도로’라는 멋진 이름의 공약이 발표되었다.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 것을 끌어모은 것이다. 국민은 세부적으로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제목을 잘 짓고 제목만 가지고 놀면 국민을 속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고속도로라는 말을 쓰면 뭔가 발전할 것 같고 또 막혔던 것이 뚫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결국 전력망이다. 전력망을 더 깔고 전력저장장치(ESS)를 많이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과도한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전력망의 불안정성을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육지에 전력망을 건설하기 어려우면 해상으로 HVDC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나씩 따져보자.
첫째, 그러면 그간 왜 전력망을 확충하지 못했을까?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은 발전소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민원이 많기 때문이다. 송전선이 통과하는 선하지(線下地)의 모든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밀양 송전탑 사례만 보더라도 공사기간의 지연이나 보상금이 엄청났다. 특히 이 송전탑 건설의 경우 전체 송전선로 가운데 몇 미터만 타결되지 않아도 전체를 쓸 수 없다. 게다가 국민정서는 보상금에 관대하다. 그것이 전기요금에 포함될 것이지만 누구도 보상금을 비난하지 않는다.
둘째, 2020년 8월 캘리포니아와 2021년 2월 텍사스의 정전사태의 경우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지원하다 보니 전력망을 확충할 수 없었던 것이 이유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정전도 전력망의 문제로 보지만 근원적으로는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가 근본 원인이다. 터빈의 구동을 통해서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 화석발전이 줄면서 전력수급의 불안정성을 관성으로 받아줄 수 있는 전원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재생에너지확대와 전력망 보강은 동시에 필요한 일이면서 동시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맞물린 문제인 것이다.
셋째, 그동안 재생에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산 전원이라는 장점을 부각하였다. 전력이 필요한 곳에 전원을 설치하게 되면 전력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실어나르기 위해서 에너지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는 말은 뭔가? 재생에너지를 수요지 근처에 수립하겠다고 얘기했었던 말이 거짓말이었든지 아니면 앞으로 마구잡이로 건설될 재생에너지에 대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대규모 수용가도 없는 전남과 제주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과도하게 공급하고 이런 행정적 오류에 대한 사후적 대책이 에너지 고속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넷째, 무임승차의 문제이다. 수요지에서 가장 먼 곳에 발전소를 설치하면 송전선을 연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이에 있는 발전소는 이미 설치된 송전망에 접속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 무임승차라고 한다. 통상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대규모 송전망이 건설되면 그 사이의 발전사업자가 혜택을 본 것이다.
전력수급계획에서 다른 발전소 건설계획은 대부분 사업의 주체와 부지가 결정되어 있다. 또한 건설의 수년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건설하는 과정에서 송전망을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경우에는 그냥 모듈을 사다가 설치만 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1년 이내에 준공이 된다. 그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설치를 해놓고도 송전망이 없어서 송출을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에너지고속도로가 있어야 무임승차를 계속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섯쨰, 에너지 고속도로가 좋은데 왜 그간 필요한 만큼만 전력망을 확충했을까? 비용 떄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필요할 것을 대비해서 건설하겠다는 것은 좋지만 미래수요까지 고려해서 당장 지출할지는 비용을 기준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전기요금이 얼마가 되는 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에너지 고속도로! 있으면 좋다. 그렇다고 앞뒤 따지지 않고 할 일은 아니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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