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맞은 K-원전, 유럽 넘어 미국 진출할 수 있을까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K-원전에 새로운 수출 기회가 열렸다. 미국 정부가 지난달 원자력발전 사업 재건을 공식 발표하면서다. 16년 만의 원전 수출에 이어 미국 시장 진출 기대감까지 커지는 분위기다. 올해 초 한·미 양국이 '원전 동맹'을 체결한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서도 수주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전업계의 시선이 미국으로 향한 건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가 원전 확대를 골자로 한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원자력발전 규모를 2050년까지 지금의 4배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4건에 서명했다. 100GW(기가와트) 규모의 원자력 발전 용량을 400GW까지 늘리고, 오는 2030년까지 미국 내 대형 원전 10기 착공에 돌입하는 게 골자다.
미국이 원전산업 재건에 시동을 걸면서 업계에서는 한국전력(한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원전 수출 경험이 있는 국내 기업의 미국 진출 가능성이 거론된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명시한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착공할 만한 능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 많지 않아서다. 1950년대 원전산업 선두주자였던 미국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가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지만, 웨스팅하우스는 현재 폴란드,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등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어 미국 내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진행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간의 건설 공백으로 약화된 미국 내 공급망도 한국 기업 진출론에 힘을 보탠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2050년 원자력 에너지 3배를 달성하려면 매년 13GW 용량의 신규 원전이 건설되어야 하는데, 현재 원자로 주단소재 공급 역량이 연간 3GW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한국 등 외국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근 20년간 미국에서 건설된 대형 원전은 웨스팅하우스가 조지아주에 건설한 보글(Vogtle) 3·4호기가 유일한데, 당시 웨스팅하우스의 파산과 자금난 등이 겹치면서 사업이 6~7년가량 지연됐다. 트럼프의 계획이 '온 타임, 온 버짓(예산 내 적기 시공)' 되려면 한국 등과의 협력이 필수적일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백악관에서 밝혔듯 미국은 1978년 이후 단 2개의 원자로만 신규 건설, 상업 운전에 돌입한 상태"라며 "생산과 건설 능력을 확보할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다수의 국내외원전 건설 레퍼런스와 공급망을 보유한 국가이자 지정학적 파트너인 한국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웨스팅하우스 변수… 韓 기업 진출엔 걸림돌
일각에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내 원전 건설을 독점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8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댄 서머 웨스팅하우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신규 대형 원전 10기 건설과 관련해 미국 당국 및 협력 업체와 논의를 시작했다. 댄 CEO는 "우리는 원전 10기 모두를 AP1000 원자로(웨스팅하우스 보유 기술)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며 신규 원전을 자사 주도로 건설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웨스팅하우스가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견제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 초 한·미 양국이 원전 지적재산권 분쟁을 종결하긴 했지만, 웨스팅하우스가 다시 지재권 소송을 제기할 경우 한국 기업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출 계약 당시에도 "한수원이 자사 기술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민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재 한·미 원전 동맹은 '유럽에선 웨스팅하우스, 아시아는 한수원' 구도로 나뉘어 있다"며 "향후 한수원 등이 미국 본토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K-원전, 사업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어"
웨스팅하우스 주도로 신규 원전이 건설되더라도 국내 기업들엔 여전히 호재라는 분석이 많다. 원자로 설계나 원자로 공급은 웨스팅하우스가 맡더라도 원전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 공급이나 시공에는 한국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웨스팅하우스는 현재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사업에서도 현대건설과 컨소시엄을 체결해 공동 사업을 진행 중이다. 장 연구원은 "글로벌 기술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건 단순 수주 기회를 넘어 원전 사업 전반을 함께 책임지는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한국 기업들에 보다 직접적인 수익성 확보의 기회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한편, 미국이 본격 원전 건설에 돌입하면서 원전주도 연일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건설 주가는 10일 오후 1시50분 기준 전 거래일 대비 2900원(4.25%) 오른 7만1200원에 거래 중이다. 원전 대표 수혜주로 꼽히는 현대건설 주가는 올해에만 186% 이상 상승하는 등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연초 1만원대였던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체코 원전 본계약 체결,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표 영향에 4만원 선을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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